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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6-19 01:26
“전공 울타리를 벗어나야 인문학이 산다”
 글쓴이 : 투쟁본부
조회 : 596  

“전공 울타리를 벗어나야 인문학이 산다”

등록 : 2013.06.16 20:26 수정 : 2013.06.1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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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취업 준비 기관’으로 변해가면서 인문학과 교양 교육이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지난달 30일 서울 흑석동 중앙대 본관 앞에서 인문·사회대 학과 폐지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집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안과 밖’ 34호 교양교육 이슈화

대학이 ‘취업 준비 기관’으로 간주되면서 인문학과 교양교육이 위기에 빠졌다는 우려와 비판이 높아진 지 오래다.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인문학 교수들 스스로 폐쇄적 전공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교양 인문학’으로 전환을 모색하고, 질 높은 교양서 출간에 노력하며, 비정규 강사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송승철 교수, 논문서 주장
오길영 교수는 미국 사례 들어
핵심과목 공통이수제 제안

최근 출간된 반년간 <영미문학연구 안과 밖> 34호는 ‘대학 교양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송승철 한림대 영문학과 교수, 오길영 충남대 영문학과 교수,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의 논문을 실었다.

송승철 교수는 ‘인문대를 해체하라!’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논문에서 “한국 대학에서 구조적으로 고착화된 전공 중심주의가 교양교육의 발전을 억압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해왔다”고 주장했다. 송 교수는 “교양교육의 주역이 되어야 할 인문학, 인문대학, 인문대 교수들이 아직도 전공 중심주의에 매몰돼 있다면, 그리하여 폭넓은 시야, 통합적 구성력, 창조적 상상력, 시민적 판단력 등의 자질을 함양시키고 궁극적으로 온전한 인간을 만드는 데 큰 관심이 없다면,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 것인가”고 질문한다. 국내에서 “연구 중심 대학의 인문대학에서조차 대학원 진로를 택하는 비율은 전체 학생 정원의 20% 미만인데도, 현실의 교육과정은 교양교육을 희생해가면서 모든 학생을 전공의 울타리 안에 가둬놓고 있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전공 인문학’을 ‘교양 인문학’으로 바꾸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한 뒤 “아예 인문대를 해체하고 인문대 교수들이 교양교육원으로 소속을 옮기고, 더 나아가서 적극적으로 교양교육원을 접수해야 하지 않을까”라고까지 말한다.

이와 함께 인문학이 지금보다 훨씬 ‘급진적인’ 수준에서 학문 간 융합을 지향해야 한다고 송 교수는 주장했다. 예를 들어 교수를 채용할 때 인문학 외의 사회과학·자연과학 등 다른 분야까지 강의할 능력이 있는 전공자를 선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인문학 교수의 정년재직권 심사때 첫번째 고려사항은 발표 논문 숫자가 아니라 수준 높은 교양저서의 출간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죽음의 속도에 육박하는 논문발표 경쟁으로, 인문학에서 저서의 중요성이 크게 후퇴하고, 신뢰할 만한 교양도서의 부족은 대학 교양교육 부실의 직접 원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비정규직 강사’ 처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교양교육은 성공할 수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현재 교양교과목 강좌당 평균 수강생 수는 55명인데, 창의적 수업이 진행되려면 이 숫자가 20명 수준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교수들은 강사들의 수업권과 최소한의 경제적 안정을 보장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며 “인문대 교수들은 강사의 수입이 전임교수의 70%가 될 때까지 임금과 강사료 인상률을 달리할 것을 결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오길영 교수는 ‘대학의 몰락과 교양교육’ 논문에서 미국 대학의 교양교육 현황을 검토한다. 오 교수는 한국 대학들이 ‘미국식 대학 개혁’을 표방하며 교양교육을 홀대하고 있지만, 정작 미국에서는 교양교육이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교양교육의 특징을 학부과정 전체 이수학점의 40~50%에 달하는 강의를 교양과목에 할애한다는 점, 학생들에게 상당한 외국어 능력과 외국 문화에 대한 소양을 요구한다는 점, 전공을 불문하고 글쓰기 교육을 강조한다는 점 등으로 요약했다. 오 교수는 한국 교양교육을 위해 미국의 중핵이수제(핵심 과목을 정해 학생들에게 공통으로 이수시키는 제도) 도입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 뒤 “하지만 대학이 실용지식을 습득하는 취업 준비 기관으로 간주되는 한 의미있는 교양교육의 재편은 기대하기 힘들다”고 우려했다.

조효제 교수는 ‘유럽 대학의 교양교육’ 논문에서 유럽 대학은 인문학을 교양으로서 가르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고 전했다.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인문교양 교육 덕분에 전공을 불문하고 인문적 토대를 어느 정도 닦은 상태에서 대학에 진학하고, 대학에선 바로 전공을 공부하는 조기 전공 교육이 일반적 모델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유럽 대학은 제도로서 인문교양 교육은 퇴조했지만 ‘인문성’의 정신은 잃지 않았다”며 “교양교육을 전공과 별개 과정으로 이해하기보다 보편적이고 비판적인 이성의 함양으로 이해하는, 다시 말해 ‘인문성’이 모든 학문, 모든 과목에 스며들 수 있게 만드는 방안을 찾아볼 것”을 제안했다. 컴퓨터 전공자가 인터넷상의 ‘잊혀질 권리’를 대중과 논할 수 있고, 외과의사가 고통과 치유와 죽음의 의미를 설명할 수 있도록, 교양으로서의 의학, 교양으로서의 법학, 교양으로서의 정보통신학, 교양으로서의 건축학 등이 가능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