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
패스워드  
  회원가입 아이디비밀번호찾기  
국회앞농성
일인시위
연대/기타
 
작성일 : 16-04-10 08:01
서정민 열사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1)/광주 시민의 소리
 글쓴이 : 투쟁본부
조회 : 558  

서정민 열사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1)

기사승인 2016.04.07  11:40:34

공유
서정민 열사가 자살한지 어언 6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대학의 강사들은 교원으로서의 정당한 지위를 갖지 못하고 있다. 열사의 죽음으로 대학 강사들이 얻은 것은 시간당 강의료 인상뿐이다. 우선 달콤한 강의료 인상에 대학 강사들은 열사를 잊고 산지 오래다. 따라서 <시민의소리>는 다시금 서정민 열사의 죽음이 갖는 의미와 함께 앞으로 강사의 교원지위를 회복하는 방안이 무엇인지를 점검하는 글을 특별기고의 형식을 빌어 4회에 걸쳐 싣고자 한다.<편집자주>

 2010.5.25. 조선대 서정민 강사가 자살했다. 아내가 식당에 일하러 간 사이에 집에서 자살했다. 그의 유서는 논문 대필과 교수 임용비리를 고발하고 있었다.

   
 

교수 임용 비리와 논문 대필 고발

그의 석·박사과정을 지도했던 조선대 당시 조○행 영문과 교수는 그에게 논문을 대필시켰다. 10년간 자신의 논문과 자신이 지도하는 대학원생들의 석·박사 학위논문 등 무려 54편을 대필시켰다. “한국의 대학이 존재한 이래 전례 없는 천문학적인 수치”(유서, 이하 같음)이다. 조 교수는 자신이 퇴직하면 그에게 교수자리를 넘겨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간에 “학원을 치우라고 하더니 어느 학교에 가서 돈벌 수 있는 기회도 저지”하며 논문 대필을 강제했다.

그로서는 조 교수의 대필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 열사는 성균관대 중문과를 다닐 때 한 학기는 학교에 다니고 한 학기는 공장에 다녔다. 조선대에서 석·박사를 했지만 유학을 다녀온 것도 아니고 이른바 SKY도 아니고 조선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심지어 대학 전공과 대학원 전공도 일치하지 않았다. 돈과 빽도 없었다. 아들도 대학을 서울로 보내달라고 했지만 돈이 안드는 해군사관학교로 보냈다. 이런 약점을 넘어 강의 자리를 유지하고 교수가 되려면 조 교수의 대필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구조였다.

언어학 중 음운론 전공인 그는 한국어·영어·일본어·중국어·산스크리크어·이탈리아어 등을 분석해 논문을 썼다. 그는 “교수 한 마리(자리)가 1억5000만원, 3억원”이라는 제의를 두 번 받았다. 그는 실력으로 교수가 되겠다고 거부했다. 조 교수는 다른 사람에게 자기 자리로 와달라며 열사에게 교수 자리를 물려주지 않을 뜻을 비추며 “이젠 가라”고 했고, 그는 자결을 선택했다.

그의 죽음은 파장이 매우 컸다. 그의 죽음이 대학 강사가 교원지위가 없기 때문이라고 보고 국회는 2011년 강사법을 개정했다. 그가 교원이었다면 신분도 있고 일정한 소득도 있을 것이므로 대필을 거부하고, 교수도 대필을 시키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교원’은 ‘선생’의 법적 표현으로 대학의 교원은 교수·부교수·조교수·강사 등으로 구분된다. 개정 강사법(고등교육법 제14조)은 “강사는 교원이다, 그러나 교육공무원법·사립학교법·사립학교연금법을 적용할 때는 교원으로 보지 아니한다”는 단서가 붙었다. 비록 불완전하지만 1977년 교원지위 박탈 이래 40년만에 회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회는 시행 일주일을 앞두고 2018.1.1.까지 모두 5년을 유예했다. 강사료도 올라 전남대 등 국립대는 시간당 4만원에서 8만원으로 두 배 오르고, 조선대 등 사립대도 3만원에서 5만원대로 올랐다.

사건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논문 표절 대필을 경계했다. 김명수 교육부장관 후보가 논문 표절이 문제가 돼 국회 청문회를 넘지 못하고 낙마했다. 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이고 IOC위원인 문대성 국회의원은 박사학위 논문 표절이 밝혀져 국민대에서 학위를 취소당했다.

왜 교수는 논문을 대필시키는가? 교수들은 1년에 1편 정도 논문을 쓰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인문계 논문은 쓰기가 어렵다. 독창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연구자로서 6∼7개월 고민하고 연구해서 발표”한다. 논문으로 쓰려면 문제를 분석하고 본질을 찾고 대안을 만들고 동시에 학계의 연구 동향을 파악해야 한다. 이 가운데 어느 것 하나라도 빠지면 포기하거나 대필에 의존해야 한다. 한번 대필은 계속 대필시켜야 하는 중독성이 있다. 학교에서 수학공부를 한번 포기하면 영원히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논문을 대필시킨 조 교수는 교수자리를 유지하고 ○○언어학회장 등을 하며 “명예교수 하시면서 학자랍시고 제자들 논문으로 연기”했다.

왜 교수 자리를 파는가? 돈이 유혹한다. 발전기금 납부라는 형식도 있다. 만약 교수 자신이 돈을 써서 교수가 되었다면 본전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먹이 사슬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열사는 죽음으로서 논문을 대필시키고 교수자리 파는 관행을 차단하려 했다.

스스로 연구하지 않으니 교수는 학생에게 가르칠 것이 없고, 학생은 배울 것이 없어진다. 사회에 대해서도 전문가로서 대안을 내놓기도 어렵다. 대학원생은 교수에게 연구 성과를 가로채기를 당하면 연구자로 크기가 어렵다. 국내에서 공부한 연구자가 유학을 거친 연구자에게 뒤지는 주된 이유이다. 결국 대학은 연구하는데도 가르치는데도 인재를 키우는데도 지역사회에 대안을 내놓는데도 기여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악순환으로 대학은 사회에서 쓸모가 없어지고 누구도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산업사회의 전태일...지식사회의 서정민

서정민 열사의 자결은 지식사회에서 발생한 사건이고, 지식사회에서 콘텐츠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산업사회에 전태일 열사가 있다면, 지식사회에는 서정민 열사가 있다. 그리고 이는 광주전남에서의 교육지표 사건을 잇는다.

전태일은 노동현실에 눈을 뜬 초기에는 자신이 서울 평화상가에서 재단사가 되어 그 지위를 바탕으로 함께 일하는 어린 여공들을 돌봐주었다. 다음에는 노동자 실태를 조사해 기업주와 노동당국 정부에 호소해 근로기준법이 준수되도록 하려 했다. 근로기준법을 엄격히 준수하는 시범업체를 설립 운영을 구상했다. 그는 이런 구상들이 실패하자 1970년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라고 외치며 자결했다.

박정희 유신독재는 1975.5.13. 긴급조치 9호를 발동하고, 1977.12.31. 대학 강사의 교원지위를 박탈했다. 1978.6.27. 전남대 송기숙, 명노근 교수를 비롯한 11명의 교수들이 교육민주화를 주장하는 ‘우리의 교육지표’를 발표했다. 당시 군사독재에 왜곡당하고 탄압당하는 한국 교육의 현실을 일본 식민지시대의 유산으로 보고 비판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교수 11명이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해직됐고, 30여 명의 학생이 구속·제적·정학 당했다. 35년이 지난 2013년에야 송기숙(78) 명예교수 등 8명이 광주지방법원으로부터 무죄를 선고받아 명예를 회복했다.

조선대는 대필사건 조사위에서 “직접 초고를 쓰신 적은 없고?”라는 질문에 조 교수가 “예, 같이”라며 ‘쓴 적이 없다’고 답변했고, “과학적·기술적 공헌 또는 기여를 한 사람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논문저자 자격을 표시 또는 예우 등을 이유로 논문저자 자격을 부여하는 ‘부당한 논문 저자 표시’는 안 된다”는 조선대학교 교원연구윤리위원회 규정(2006.11.1.제정, 2008.6.30. 개정)이 있는데도, “고 서정민 박사와 조○○ 교수가 공동으로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들은 공동연구로 볼 수 있으며, 또한 부당한 저자표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광주의 경찰, 검찰은 이를 인용해 조 교수에게 무혐의 처분을 했다. 광주지방법원은 열사 유족이 조 교수와 조선대에게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이 결정을 인용해 기각했다. 뒤집어 말하면 대필해도 괜찮다는 판결이다.

4.13총선에서 새누리당은 문대성 표절자를 공천하고, 더민주당은 제자 석사학위논문을 표절한 교수를 비례대표 1번으로 추천했다. 이렇게 서정민 열사 사건의 의미가 퇴색했다.

광주고법은 대필이라 하더라도 강제성이 있었느냐를 입증하라고 하고 있다. 5월 13일 재판을 시작하는 광주고법은 대법원이 2016.3.31. 계약제 연구교수(강사)에게 논문을 대필시킨 교수에게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형을 확정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김영곤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 대표 srangni@hanmail.net

<저작권자 © 시민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