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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8-25 06:42
대가없는 대학원생의 그림자 노동
 글쓴이 : 투쟁본부
조회 : 738  
대가없는 대학원생의 그림자 노동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사전 편찬 인세 22년간 교수들 자의적으로 사용… 대학원생의 ‘노동관행’ 다시 도마에


25 년 전 일이다. 1989년 한국외대 이탈리어과에서는 허인 교수(작고)를 중심으로 교수, 강사, 대학원생 20여명이 모여 이한사전(이탈리아어-한국어 사전)을 편찬하기로 했다. 사전의 편저자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탈리아어과다. 허인 교수가 쓴 머리말에는 사전 편찬에 수고한 이들의 이름이 열거돼 있다. “본 사전의 편집위원으로서 허인 교수, 최보선 교수, 한성철 교수, 김운찬 교수, 윤경숙 교수와 대학원생 조문환 등 20여명이 협력했고 교정도 평균 6교 이상 보았다.”

당시 참여 강사가 횡령소송 제기당시 석사과정을 마치고 강사생활을 하던 윤경숙 강사도 사전 편찬작업에 참여했다. 사전은 1700쪽이 조금 넘었는데, 윤 강사가 작업한 분량은 400쪽이 조금 넘었다. 전체 사전의 4분의 1가량인 셈이다. 편찬작업은 3년이 꼬박 걸렸고 1992년에 완료됐다. 컴퓨터가 보급되지 않았던 때라 750자 원고지에 손으로 써가면서 사전을 편찬했다. 지원된 제작비는 총 500만원이었다. 3년간의 편찬작업이 끝나고 윤 강사가 받은 돈은 10만원이었다. 수고비 치고는 적은 돈이었지만, 처음부터 대가를 생각하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이전까지 이한사전은 소사전밖에 없었다. 큰 사전이 처음으로 출간된 만큼 사전을 받아 들었을 때는 보람도 느꼈다.잊고 있던 25년 전 기억이 다시 떠오른 건 지난 3월이다. 지금도 한국외대 이탈리아어과에서 강사생활을 하고 있는 윤 강사는 우연히 이한사전의 인세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다. 22년 동안 몇 부가 팔렸는지도 몰랐고 인세가 나온다면 사전의 편저자가 이탈리아어과인 만큼 당연히 과 기금으로 쓰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지난 22년간 16회에 걸쳐 총 1억원 가까운 인세가 지급되었으며, 인세는 소수의 학과 교수들이 자의적으로 나누어 가진 것을 확인했다. 그는 “사전 인세가 당연히 잘 쓰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엉뚱한 사람들이 용돈으로 썼던 것 아닌가. 1년에 500만원씩 나온 돈을 네 분이 나눠 썼다니까 허탈하고 분개되더라”고 말했다. 윤 강사는 인세를 수령한 같은 학과 ㄱ 교수에게 업무상 횡령 혐의로 형사소송을 제기했다.윤 강사에 따르면 ㄱ 교수는 인세를 수령한 이후 이를 같은 학과의 ㄴ 교수와 ㄷ 교수 등에게 자의적으로 분배했다. 윤 강사의 기억으로는 ㄴ교수와 ㄷ 교수는 사전 편찬작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당연히 사전 머리말에도 편찬에 참여한 저자로 이름이 올라와 있지 않았다. 윤 강사는 “ㄴ 교수와 ㄷ 교수는 ㄱ 교수의 스승·선배 되는 분들이니까 소위 ‘관례적으로’ 그분들에게 드린 것 같다”면서 “3년 동안 강사 및 대학원생들이 고생한 게 교수들 개인 용돈을 주자고 한 것인가. 말도 안 된다. 공동의 산물인 저작물인데 왜 몇몇 사람이 받아가서 사적인 용돈으로 쓰나”라고 말했다.

인세 논란이 일고 있는 이탈리아어-한국어 사전.
해당 교수 “착취한 것 아니다” 반박

ㄱ 교수는 반박했다. ㄴ 교수와 ㄷ 교수는 사전의 편집·감수작업에 참여했기 때문에 인세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ㄱ 교수는 “사전 편찬 이후 다른 교수들이 은퇴하고 내가 대표저자로 혼자 남았기 때문에 매번 교정을 본 것도 내가 다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인세라는 것이 개인의 노력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학과 기금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윤 강사를 비롯해 사전 편찬작업에 참여한 강사 및 대학원생들에게 노력의 대가가 돌아가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ㄱ 교수는 윤 강사가 인세 외에 다른 대가를 받은 것 아니냐는 취지의 말을 했다. “생각해 봐라. 윤경숙 강사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국외대 이탈리아어과 강사다. 왜 지금까지 강사를 할 수 있겠나. 요즘 대학에서 강의 하나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줄 아나. 사전 때문에 그렇다는 게 아니라 윤 강사가 다른 여러 가지 학과에 봉사도 하고 그랬기 때문에 학과에서 그만큼 배려한 것이다. 강사들을 착취했다고 생각하면 절대 안 된다.”

대학에서 강사 및 대학원생들의 노동은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가려져 있기 십상이다. 교수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서, 학교에 남아 있기 위해서는 지불되지 않는 그림자 노동을 알아서 해야 한다. 이는 22년 전만의 일이 아니다. 박원익 고대 일반대학원 학생회장은 “대학원생들의 노동의 대가라는 것이 워낙 불투명하고 거기에 대한 종합적인 관례가 없다. 그래서 심한 경우 논문 대필까지 있을 수 있는데, 일관된 가이드라인이 없다 보니 공동저작이나 공동연구에 대해서는 거의 방임상태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서울대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대학원생 ㄹ씨는 “학과나 교수님들의 일을 떠맡고 무보수로 하는 것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고 크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 서 교수와 학생 간의 권력관계상 교수의 뜻에 따라 학생은 앞으로 평생 진로가 막힐 수도 있다. 얼마 전 김명수 교육부총리 후보자에게 제자였던 초등학교 교사가 편지를 써서 화제가 됐는데, 그분이 편지 말미에 ‘다시는 논문도 못 쓰고 연구도 못할지 모른다’는 말을 했다. 그게 농담이 아니라 어느 정도 가능한 일이다”라고 말했다.윤 강사는 소송과정에서 대학원생들에게 진술서를 받았던 과정을 설명했다. “현재 강사 및 대학원생들에게 관련 진술서를 받았다. 22년 전 내가 했던 것처럼 사전 편찬 일을 했지만 인세에 대해서 들어본 적도 없고 돈을 받은 적도 없다는 내용의 진술이었다. 처음에는 다들 진술서를 쓰고 서명을 해주더라. 그런데 두 번째 진술서가 필요해서 다시 요청했더니 다들 안 해줬다. 강사들은 바람 앞의 등불이다. 여기서 바람 불면 강의고 뭐고 다들 날아갈 판국이니까 이 일에 관여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대학원생 ㄹ씨는 현재 일고 있는 인세 논쟁에 대해 그나마 22년이 지난 일이기 때문이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22년이 묵고 보니 교수와 강사 및 대학원생 간의 갑을관계가 해체되고 그때 사전 편찬에 동원됐던 분들 중에 교수가 된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나마 이러한 논쟁이 가능한 것이지 현재 갑을관계가 있는 상황에서는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대학원생 “프로젝트 인건비 받지 못한다” 14%

지난 7월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에서는 <대학원생 실태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450명의 대학원생(석사과정·석박통합과정·박사과정·석박사수료)을 대상으로 설문조 사를 실시했다. 대학원생들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후 받는 인건비에 대한 설문은 말 그대로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 by case)였다. 현재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는 117명을 제외하고 ‘생활하기에 충분하게 프로젝트에 책정된 만큼 받고 있다’는 응답은 8%(30명)에 그쳤다. 응답자의 29%(111명)는 ‘프로젝트에 책정된 만큼 받고 있지만 생활하기에 부족하다’고 말했고, ‘인건비를 받고 있지 않다’는 응답자도 14%(54명)에 달했다. 그밖에 ‘책정된 인건비를 제대로 받지 못하며 생활하기에 부족하다’는 응답자가 10%(38명), ‘정확하게 얼마를 받도록 되어 있는지 모르고 교수가 관리한다’는 응답자는 6%(25명)였다. ‘생활하기에 충분하나 책정된 인건비를 다 받지 못한다’는 3%(13명)였다. 설문에 참여한 한 대학원생은 “100% 가깝게 프로젝트에 시간을 할애해야 하지만 노동에 대한 임금을 받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정량적으로 이러한 것을 측정하고자 하는 도구 또한 없다”면서 “대부분 대학원생의 경우 노동시간 대비 받는 급여가 최저시급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