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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4-20 16:37
대학의 영원한 그늘, 시간강사/서울대 사회과학글쓰기
 글쓴이 : 투쟁본부
조회 : 808  

대학의 영원한 그늘, 시간강사

-사회과학글쓰기 체험에세이 과제-

파워레인조

변성엽, 정성아, 정수환,

조민희, 유연경, 이기옥

“하나의 유령이 대학을 떠돌고 있다 …… 시간강사라는 유령이”

대학 사회에서 참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매우 심각하며 비합리적인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시간강사 문제이다. 시간강사들은 대학 내에서 강의를 하고 학생들을 지도하는 등, 전임 교원들과 같은 일을 한다. 이들의 수는 결코 적지 않다. 이들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들 중 적게는 40%, 많게는 70%의 비중을 차지하며, 그 수는 약 7만에 달한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시간강사는 대학의 아주 중요한 구성원임에 분명하다. 물론 이건 우리가 생활하는 서울대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시간강사들의 노동조건은 너무나도 열악하다. 여러 통계들에 의하면 이들의 급여는 연간 평균 600만원을 정도이다. 고용 상황 역시도 불안정하며, 법적으로는 대학에 고용된 노동자가 아닌 프리랜서로 취급받기 때문에 언제 수업이 끊겨도 항의조차 할 수 없다. 게다가 박사 학위 이상 소지자가 다수인 시간강사들은 비정규직법의 적용 대상에서도 벗어나 있으며, 4대 보험은 꿈도 꿀 수 없는 처지이다. 이러한 상황에 내몰린 강사들은 힘겹게 살아가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가령 서울대학교에서도 지난 2003년, 2006년, 그리고 2007년에 세 명의 강사가 처지를 비관하고 자살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의 자살에도 불구하고 대학에서의 시간강사 문제는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시간강사 문제는 사실 매우 고질적인 문제이다. 1977년 시간강사 제도가 도입되었고, 90년대 이후에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정권도 문제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았고, 해결 기미 역시 보이지 않는다. 분명 대학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지만, 심각한 곤란을 겪고 있으며 문제 해결의 기미조차 잘 보이지 않는 시간강사들. 학교를 다니는 대학생의 한 사람으로서 매일, 매주 마주하지만 그 문제를 잘 느끼지 못했던 이들. ‘파워레인조’에서는 바로 이 시간강사의 권익을 위해 투쟁하는 분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들의 목소리를 조명하고자 한다. 또한 이 문제를 야기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탐색하고, 적극적인 해결 방안을 고민하고자 한다.

2000일 넘게 천막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2013년 3월 14일, 어딘가는 그리고 누군가는 화이트데이라 술렁이던 시간. 그러나 국회의사당 앞은 찬바람이 휑할 뿐이었다. 우리는 이곳의 칼날 같은 바람과 그리고 여름에는 찌는 듯한 폭염을 몇 해째 천막에서 마주하고 있는 김동애(66)씨와 김영곤(63)씨 부부를 만날 수 있었다. 이들 부부는 한때 대학교 시간강사로 재직했으나, 지금은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의사당 천막 속에 있었다. 2007년 강단 대신 천막을 선택한 이래, 어언 2000일 넘는 시간이 지나갔다. 이들 부부는 대부분의 시간을 천막 안에서 보내며 의식주를 해결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이 2000일 넘게 살아온 천막 속에 들어가자, 비좁은 공간 안에 여기저기 배치되어 있는 가재도구들. 빼곡히 쌓인 서류들. 천막 안에 발을 디디면서 이런 것들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다. 천막 안은 두 사람이 생활하기에도 상당히 빠듯해 보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고시원보다 열악한 곳. 여기에서 이들은 몇 년째 국회를 향해 닿지 않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들은 무엇을 위해 이토록 힘든 생활을 몇 년째 이어가고 있을까. 이 두 부부 시간강사는 환갑을 넘긴 고령의 투쟁자들이다. 이들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권리사각지대 중 하나인 시간강사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이들은 각각 한성대·고려대의 시간강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소한의 생존도 보장받지 못하는 시간강사의 현실을 목도하고, 이러한 현실에 대한 투쟁을 위해 모든 것을 던졌다. 하지만 이러한 투쟁 강사들이 얻은 것은 대학 측의 해고통보뿐이었다. 그 뒤 이들은 전혀 강의를 맡지 못한 채 이 차가운 천막 안에서 현실을 지켜봐왔다. 두 부부는 이 천막 생활을 하면서 환갑을 맞이했다.

이러한 천막 농성이 그나마 가능했던 것은 아마도 두 부부의 자식들이 모두 장성하여 사회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본인들도 강단에 복귀하는 것을 기대하지 않고 있어 보였다. 그럼에도 그들이 투쟁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 부부는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는 시간강사의 현실 자체에 분노하고 있었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 강사 분들의 자살이에요"라는 김동애씨의 말에는 안타까움과 분노가 묻어났다. 투쟁을 시작하고 나서 목숨을 잃은 강사가 10명이 넘는다는 말을 꺼내면서 그들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이러한 이들 부부의 모습에서 다소간의 비장함이 묻어 나왔다. 비록 그들 자신의 강단 복귀 문제는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그들이 고통 받는 시간강사들을 위해 대학, 국회 나아가 국가와 투쟁하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부부는 시간강사 처우의 실태에 대해 하나씩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과연 이들이 말하는 시간강사의 현실은 어떤 것인가.

시간당 평균 강의료 4만 7100원 …… 시간강사의 현실

김동애 씨가 말하는 보통 시간강사가 1년 동안 벌어들이는 수입은 700-800만원. 시급강사이기 때문에 방학 중에는 그나마 있던 급료도 벌지 못한다. 사실상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기도 빠듯한 돈이다. 당장 주변을 둘러봐도, 나이 지긋하신 강사분들이 학생식당에서 학생들과 함께 부대껴 식사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실제로 발표된 통계자료에 의하면, 박사학위까지 딴 시간강사들이 받는 시간당 평균 강사 강의료는 고작 4만7100원이었다. 학기중에만 번다는 것을 고려하면 정말 빠듯한 돈이다. 김동애 씨는 이러한 강사들의 현실에 대해 “우리는 그나마 아이들이 다 컸지만, 다른 강사들은 어떻겠는가? 그래서 이혼하고 자살하는 강사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거기에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많은 비용을 들이고도 생계조차 제대로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이 그들을 자살로 내몬다. 이러한 젊은 강사들은 끊임없이 생겨나고 고통을 받고 있다.”는 말을 덧붙이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실제로 시간강사들의 비관 자살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다니는 서울대에서도 2003년 노어노문학과 시간강사 백모씨, 2006년 독어독문학과 시간강사 권모 씨, 2008년 2월 불어불문학과 강사의 자살 등이 있었다.

그렇다면 왜 시급인상을 제대로 요구하지 못하는가? 김동애 씨는 “다음 강의를 배정받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93.5%의 시간강사들은 한 학기단위로 채용된다. 이들은 한 학기 수업을 맡고 언제든지 전화 한 통으로 해고될 수 있다. 심지어 국민대 등 몇개 대학은 4개월 계약서를 요구하고, 2년마다 1학기를 강제로 쉬게 하는 규정이 있다. 성균관대는 강의 3년 연한제를 둬 3년 이상 강의할 수 없게 한다. 즉 시간강사 제도는 최저임금에도 훨씬 못 미치는 저렴한 비용과 손쉬운 해고라는 특성 때문에 대학들의 손쉬운 구조조정을 위해 존속되고 있는 것이다. 1977년에 박정희 대통령이 시간강사의 교원직위를 박탈한 이래로 학교법인 측은 이를 악용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하고 있다. 계약서도 없었다. 조교가 다음 학기 강의를 통보하는 식이었다. 시간강사들은 대학 내에서 강의를 하고 학생들을 지도하는 등 전임 교원들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으며, 이들의 비율은 대학에 따라 적게는 40%, 많게는 70%에 이르는 사실을 비추어 볼 때 이는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다.

일각에서는 시간강사들이 이렇게 열악한 상황을 견디고 있는 것은 시간강사가 교수 임용이 되기 전에 잠시 거쳐 가는 직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김동애 씨의 말에 의하면 실제 교수 임용 비율은 6.6%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시간강사직과 다른 부업을 병행해 생계를 이어가야 한다. 부양가족을 지니고 경제적 뒷받침이 없는 상태에서 다년간 시간강사로 버티는 것, 그들에게 연구는 고사하고 시간강사로 지내며 임용에 필요한 정도의 논문을 쓰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아래는 古 한경선 박사의 유서로, 이를 극렬하게 드러낸다.

(귀국 초에는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듯, 열심히 강의하고 논문 쓰면 학교에 자리를 잡을 수 있으리란 마음으로 하루를 쪼개어 고시원과 독서실을 전전하며 토요일이든 일요일이든 열심히 논문을 쓰며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선 이러한 연구업적과 강의경력과는 다른 무언가가 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깨닫기 위해서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뜻 맞는(이해가 맞는) 몇몇 학교들끼리 연합해서 압력을 가하기 위해 한 특정인의 학교 임용을 가로막아, 그의 학문적 업적이나 발전을 저해함으로써 경쟁에서 도태되어 결국엔 그의 삶을 파탄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부양가족을 지닌 경제적 뒷받침이 없는 상태에서 다년간 시간강사로 버티기는 불가능하고, 강의교수로 지내면서 임용에 필요한 정도의 논문을 쓰기는 사실상 거의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古 한경선 박사 유서)

2007년 4월 대법원 판례에서 강사들의 근로자성이 인정된 것과는 상반되는 현실이다. 김동애씨는 “교수임용 과정에서 지연, 학연이 없으면 임용이 되지를 않는다”며 “어떤 학교는 임용과정에서 돈을 요구했으며 심지어는 논문대필까지 요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것들이 학교에 의해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주장했다. 1995년 참여연대의 좌담회에서는 이러한 교수 임용의 암묵적 기준을 ‘칠거지악’으로 표현하며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교수 임용에 ‘칠거지악’이란 게 있어요. 첫째, ㅇㅇ대 출신이어야 하고, 둘째, 외국유학을 다녀와야 하고, 셋째, 저축한 돈이 있어야 하고, 넷째, 든든한 연줄이 있어야 하고, 다섯째, 인문사회과학은 힘들고, 여섯째, 재야 학술 활동을 했으면 안 되고, 일곱째, 여자가 아니어야 함 등등입니다. 아주 웃기는 이야기죠” <좌담 - 교수 임용 칠거지악 1995년도>

심지어는 암묵적인 기준으로 떨어뜨리는 정도를 훨씬 벗어나 불법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일들이 자행되기도 한다. 교수임용을 두고 금전을 요구하거나 비리가 있기도 하고, 계약조건을 무시하거나 심사 과정을 조작하는 등의 일들도 벌어진다. 이처럼 객관적인 기준이 없고, 교수로의 임용 혹은 당장 다음 학기 생계를 위한 강의 배정이 학교의 입맛대로 이루어지는 현실 속에서, 시간강사들은 철저한 약자일 수밖에 없다.

제자리걸음인 시간강사 처우 개선 노력

시간강사들은 노동조합 조직률조차 매우 낮다. 김동애 씨는 “민주노총 산하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이 있지만 3% 내외의 낮은 조직률을 보이며 조합원은 2011년 9월 기준 약 2천 명이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김동애 씨는 그 이유로 두 가지를 뽑았다. 대부분이 강사들은 강사직을 평생 직업으로 삼고 있는데 문제를 제기하면 학교뿐 아니라 학계에서 매장당하게 되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시위에 나서는 순간 당장 생계가 힘들어지니 아무도 나서려 하지 않는다. 둘 째 시간 강사들에게는 노조 문제에 대해 생각할 시간조차 없다. 그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여러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강의를 하고 교수 임용을 위해 논문까지 써야 하기 때문에 다른 일은 거의 못하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시간강사 처우 개선을 위한 법적인 노력도 있었다. 1977년에 박정희 정권이 강사들의 교원지위를 박탈하면서부터 시작된 그들의 노력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에서의 실패를 겪는다. 하지만 실패를 딛고 일어나 2007년에 법안의 통과시도가 있었고, 2011년에 고등교육법이 개정되었다. 현재 국회가 고등교육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통과시켜 2013년 1월1일부터 시행하기로한 법안은 1년 유예된 상태다. 개정안은 시간강사를 고등교육법상 교원으로 인정해 '강사' 지위를 부여했다. 또 계약기간을 1년 이상으로 규정했다. 현재 4~6만원인 평균시급도 1만원 인상키로 했다. 하지만 김동애 씨는 “이들은 교육공무원법, 사립학교법, 사학연금법에서는 제외돼 실질적으로 쓸모가 없다.”며 “심지어 이 법은 법정 전임교원과 관련해서 개악법.”이라고 말했다. 대학은 법적으로 일정 수 이상의 교수(법정 전임교원)를 확보하도록 되어있는데(문과 학생 25명당 1명, 이과 20명당 1명) 현재 적정수의 50%이상이 되면 용인해주고 있다. 그런데 이번 법안은 그 중 20%를 시간강사로 대체시키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오히려 현재 평균 4.2시간을 강의하고 있는 강사의 절반이 해고되고 나머지 20%에 해당하는 사람에게 9시간 강의가 몰리는 계약이 체결된다는 것이 김동애 씨의 주장이다. 거기다가 이러한 시간강사와 교수가 똑같이 법정 전임교원 충원율에 들어간다는 것 또한 문제로 작용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해결책은

김동애 씨는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학생당 법정 전임교원이 턱없이 적다.”며 “우리의 요구는 원래대로 법정 전임교원 100%를 채우라는 것이다.”고 자신이 생각하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자신이 내세우는 해결책의 재정적 현실성에 대해서 그는 “국립대의 경우 공무원의 수를 늘리는 예산을 책정할 수 있고, 사립대의 경우 교수와 시간강사의 임금을 합리적으로(예를 들면 4:1) 조정해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호봉제의 필요성도 주장했다. 2천 5백정도의 호봉만 되어도 시간 강사들의 최소한의 생존은 보장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1년, 2년 단위로 계약하게 되면 학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전문직의 비정규직화의 시작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이러한 고학력 비정규직자의 양산을 조장하고 있는 시간강사 단기재임용제도이다. 그는 “이 제도는 자유나 진리를 가르치는 강사에게는 더욱 치명적인 제도”라며 “호봉제가 도입되면 이러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그가 내세우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전임교수로만 100%를 뽑아 호봉제를 실시하는 구조 개혁인 셈이다.

천막을 떠나며

오늘 이 천막에 발 디디기 전까지, 우리는 2000일 넘게 냉혹한 현실과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알지 못했다. 강단 앞에 서는 강사라는 이유로, 우리에게 학점을 부여하는 지위에 있다는 이유로 그들의 고통을 간과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지금이나마 우리는 이 천막 안의 고통을 목격할 수 있었지만,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비좁은 천막에 대해 알지 못할 것이다. 고학력, 대학근무라는 겉만 그럴싸한 시간강사들의 모습에 사람들은 그들의 고통과 좌절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이 천막 농성에 대한 기사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2007년에 농성을 시작한 그들의 기사는 해가 갈수록 현격히 줄어들었다.

그러한 까닭에 우리에게 가장 절실히 다가온 부분은 그들이 사회 구조의 모순을 한 몸에 담고 있는 노동자라는 점이었다. 차분한 두 부부의 목소리가 조금씩 커질수록 노동자로서의 시간강사가 생생하게 다가왔다. 시간 강사들은 고학력이고 대학에 근무하지만, 사람들의 생각에 현저히 미달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사회의 지배구조는 이들을 마치 귀족적 노동자로 포장했다. 이에 대해 이 천막 안의 사람들은 그것이 아니라고 2000일 넘게 외쳐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외침에도 천막이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아니, 이 천막들이 더 늘어나지 않으면 다행이다. 2000일 넘는 그들의 외침은 이제 거의 묻혀버렸고, 머리가 희끗한 이 투쟁자들 역시 지칠대로 지쳐보였다. 또한 이들의 천막도 이제는 상징으로서만 남아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하는 듯하다. 한달이면 끝날 줄 알았다던 이들의 투쟁은 이제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 천막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회의 구현은 이제 두 부부의 힘만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이제는 대학생들이 이들의 우군이 되어 발전적 투쟁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들은 학생들 역시 이러한 시간강사의 현실로 인해 피해를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대학은 스펙경쟁을 도와주는 곳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가르쳐야 하는 곳"이라는 김동애씨의 말에는 학생들의 권리를 망각시키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 내재해 있다. 학생들은 사회구조가 어떠한 모순관계 속에서 흘러가고 있는지에 대해 파악하는 진정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즉, 학생들은 시간강사 문제에 대해 제3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발전적 투쟁에 대한 고민은 곧 학생 사회에 대한 고민이 되고, 그것은 학생사회의 발전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러한 발전을 위해 우리는 방관이 아닌 참여를 생각해야 할 때이다.